광주보훈청 8월 『우리고장 위대한 대한인』 고광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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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광주보훈청 8월 『우리고장 위대한 대한인』 고광순 의병장

불원복 태극기, 호남 의병장 고광순 선생
국권 수호 위한 불굴의 항일 투쟁

광주보훈청 8월 우리고장 위대한 대한인, 고광순 의병장 선정
광주지방보훈청은 8월 ‘우리고장 위대한 대한인’으로 고광순 의병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고광순 의병장은 국권 침탈 위기 속 "머지않아 나라를 되찾을 것이다"라는 굳은 신념을 태극기에 새기고 끝까지 결사항전을 벌인 호남의 의병장이다.

고광순 선생은 1848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제봉 고경명 선생의 12대손이다. 대대로 내려온 충의의 가풍 속에서 성장한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이 일어나자 기우만·기삼연 등 호남 유림들과 함께 광주·나주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키며 항일 투쟁에 나섰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권이 강탈당하자, 선생은 1906년 담양 창평에서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능주, 동복, 구례 등 전남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웠다. 일제는 선생의 기세를 꺾기 위해 담양 본가를 습격하여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으나,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불원복(不遠復)'을 수놓은 태극기를 제작하여 의병부대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이후 1907년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 해산에 맞춰 장기 항전을 결심하고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본진을 구축했다. 그해 10월 일제 군경의 대대적인 포위 속에서도 부하들에게 뒷날을 기약하며 후퇴할 것을 명하고, 자신은 "의로 일어섰으니 의로 죽는다"며 끝까지 결사전을 펼친 끝에 장렬히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아울러 8월 15일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국권과 빛을 회복한 ‘8·15 광복절’이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 1940년 한국 광복군 창설과 국내진공작전 준비 등 35년간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연합국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지방보훈청은 8월 ‘우리고장 위대한 대한인’으로 선정된 고광순 의병장의 숭고한 희생과 불굴의 의기를 기억하며,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권 회복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종수 기자 0801thebetter@naver.com